죽음을 적다가, 삶이 선명해졌다
10명의 참여자가 9월 한 달 동안, 20일간 유언장을 썼다. 매일 아침 내가 유언장의 첫 문장을 오픈카톡방에 올리면, 참여자들은 각자의 유언을 톡으로 돌려보냈다. 짧게는 한 줄, 길게는 한 페이지. 어떤 날은 '못 쓴 날'이라는 짧은 고백만 남기도 했다.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엔 내심 걱정이 많았다. '죽음'을 매일 꺼내 쓰는 일이 너무 무거운 숙제가 되지는 않을까. 20일을 다 채울 수 있을까. 그런데 20일이 지나고 참여자들이 보내온 소감을 읽으며,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됐다.
- 내가 살아온 시간을 한 문장으로 남긴다면?
- 내 삶에서 정말 중요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 내가 살아오면서 참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은?
- 내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하나 남긴다면?
- 고맙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에게 한마디를 남긴다면?
-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에게 한마디를 남긴다면?
-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 "당신 덕분에 내 삶이 조금 더 괜찮았습니다." 이 말을 전하고 싶은 사람은?
-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나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은?
죽음을 쓰면, 삶이 올라온다
소감들에서 가장 자주 반복된 단어는 뜻밖에도 '죽음'이 아니라 '삶'이었다.
죽음을 적는 행위는 역설적으로 '살고 싶은 방향'을 끌어올렸다. 유언장이란 끝을 쓰는 종이인데, 참여자들은 그 종이 위에서 자꾸 '남은 날'을 발견했다.
어떤 분은 톡으로만 쓰지 않고, 노트에 직접 손으로 유언장을 눌러 적어 보내주시기도 했다. 종이 위에 꾹꾹 눌러쓴 글자에는, 카톡 글자로는 담기지 않는 결심 같은 것이 묻어 있었다.
원치 않는 죽음을 한 번 겪은 사람
어떤 분은 6년 전의 기억을 꺼내 왔다.
그 뒤로 죽음이 먼 미래가 아니란 걸 인지하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짐했어요. 내일 죽어도 후회 없는 선택을 하고, 후회가 있어도 아쉬워 말고, 지금을 받아들이고 충분히 하루하루를 온전한 나의 삶으로 만들자고." — 참여자 C
이분은 수술 동의서라는 한 장의 종이로 죽음을 한 번 '당해본' 사람이었다. 그 뒤로 삶을 보는 각도가 달라졌다. 유언장쓰기 20일은, 그 각도를 다시 꺼내 한 번 더 가다듬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스스로를 달래며 걷기
또 다른 분의 소감에는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가 들어 있었다. 마라톤을 신청해두고 인대가 끊어져 못 나간 날의 실망, 다시 준비해 결국 뛰게 된 과정. 그 모든 '예기치 않음'을 받아들이기로 한 다짐.
나와 차근차근 삶의 소풍길에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걸어가겠습니다." — 참여자 D
유언장을 쓰다가, 자기 자신에게 다정해지는 글을 쓰게 된다. 이것도 20일 동안 반복해서 본 장면이었다. 끝을 바라볼수록, 지금 옆에 있는 사람과 지금 걷고 있는 자신에게 눈이 간다.
막연했던 것이, 가까워진다
10명이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는데, 소감의 결은 비슷했다. '죽음은 멀리 있는 줄 알았다. 쓰고 보니 가까이 있었다. 그래서 삶을 다시 보게 됐다.'
이것이 죽음문해력이다
죽음문해력(Death Literacy)은 어려운 개념이 아니다. 죽음을 피하지 않고 꺼내 다루고, 내 죽음과 타인의 죽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힘이다. 그 힘은 애도의 자리를 만들고, 돌봄의 결정을 돕고, 결국은 지금 이 삶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
유언장쓰기는 그 힘을 기르는 가장 조용한 훈련이다. 거창한 책도, 전문가의 강의도 필요 없다. 매일 아침 한 문장의 질문 앞에서, 자기 삶을 들여다보고 한 줄 적는 것. 그것만으로 '죽음'이라는 단어가 입에 익는다. '죽음'이 입에 익으면 '지금'이 또렷해진다.
참여자 B의 문장을 다시 가져온다.
인간이 본능처럼 갖고 있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살고싶은 의지'로 연결된다.
20일간 유언장을 함께 쓴 10분께,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께 이렇게 전하고 싶다. 죽음을 적어보자. 매일 한 문장이어도 좋다. 그 종이 위에 삶이 올라올 것이다. 선명하게.
죽음문해력커넥트는 10월에 '데스티벌'을 연다. 유언장쓰기는 그곳에서 다른 이름으로, 다른 모양으로 또 열릴 것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죽음을 꺼내 보기를. 그 자리에서 삶이 더 또렷해지기를.